
침대에 누워 Tailscale로 컴퓨터에 접속한다. 에이전트가 작업한 내용을 훑어보고 Yes를 누른다. 다시 보고, 또 누른다. 그러다 잠든다. 쇼츠를 넘기다 잠드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다음 날에는 기능이 하나 생겨 있다. 프롬프트만 잘 쓰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해야 할 일도, 해볼 만한 일도 계속 늘어난다. ADHD가 인재가 되는 시대라는 말이 왜 나오는지 알 것 같다. 몰입할 거리가 끊이지 않으니까. 다만 이렇게 일하고 나면 내가 뭘 더 잘 알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AI는 더 빠른 태핑을 도와줬다. 그런데 빠르게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는 것과 실력이 느는 것은 다른 일이다.
정보의 격차로 돈을 벌 기회가 생겼고, 예전이라면 앉지 못했을 사업 제안의 테이블에도 앉게 됐다. 그런데 막상 앉아보면 돈 벌기 참 어렵다. 그 아이디어가 되는 사업인지, 고객이 왜 그것을 사야 하는지, 내가 만들겠다고 한 것을 작은 팀으로 어떻게 지속할지 판단해야 한다. AI가 코드를 대신 쓸 수는 있어도 그 판단의 책임까지 가져가지는 않는다.

엔지니어는 같은 AI 도구를 쥐었을 때 분명 유리하다. 그렇다고 사업 머리까지 따라오는 건 아니다. 나는 지금 필요한 능력을 비즈니스적인 감각과 최적화하는 능력, 두 가지로 보고 있다.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아이디어의 가치를 평가하는 힘. 복잡한 현상에서 핵심을 찾아 단순하게 설명하고 시스템으로 만드는 힘. 소수의 인원이 여러 고객의 다른 요구에 대응하려면 특히 그렇다.
단순하게 만드는 일에는 함정도 있다.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복잡함을 없는 것처럼 취급하면, 그럴듯한 말과 화면은 빠르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결과가 따라오지 않으면 그건 고객을 속이는 일에 가까워진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말이다.
원래도 쉽게 돈 버는 사람들을 보면 현타가 왔다. 불법은 피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사람들. AI가 생기고는 사기 치기에도 더 좋은 환경이 됐다고 느낀다. AEO나 GEO를 광고하는 사람들까지 싸잡아 의심했던 적도 있다. 그러다 가짜 고객센터 번호를 AI 답변에 띄운 사례를 봤다. 같은 기술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누군가는 고객을 돕고 누군가는 그 고객을 속인다.
그래서 B2B가 마음 편했다. 클라이언트의 성공을 지표로 삼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그 성공에도 소위 말하는 해킹이 필요하다. 고객을 더 잘 이해해서 문제를 푸는 해킹도 있고, 빈틈을 이용해 숫자만 올리는 해킹도 있다. 클라이언트의 사업을 이해하는 데서 멈추면 안 된다. 그 사업의 고객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까지 봐야 한다.
하루하루 상황은 크게 달라지고 사유할 시간은 부족하다. 빨리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다고 AI가 나를 자연스럽게 더 깊이 생각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사례를 많이 보고, 왜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끝까지 따라가고,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다시 확인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재능의 벽을 이야기하기 전에 그 훈련을 얼마나 했는지부터 봐야겠다.
개인 앱을 만들고, 시각화 스킬과 지식화 스킬을 만드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내가 본 것을 더 잘 흡수하고 다시 꺼내 보려고 환경을 만든다. 물론 이것도 또 하나의 메타 셋업에 빠져 정작 공부는 미루는 방식이 될 수 있다. 도구가 늘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성장한 것은 아니다.
이제는 AI가 벌어다 준 일을 감당해야 할 때다. Yes를 더 많이 누르는 것만큼, 무엇을 이해했고 무엇을 아직 모르는지 붙잡고 있어야 한다.